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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팬픽] 옆집 꼬맹이가 날 따르게 된 건에 관하여 02화

by 페텔기우스 2020.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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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명한아 거기 옆에 잘 들어라."

"네."


그라인더가 돌아가는 소리가 귀에 들리고, 사방에서 사람 한명은 우습게 보낼만한 무게의 철근이 놓여있었다.

처음에 이거 잘못 들다가 진짜 저 세상 문턱까지 갈 뻔했었지.

지금이야 유령이 생겨서, 무작정 힘이 아니라 허리나 여러 부위를 활용하면서 잘 들고 있었다.

그래도 덩어리 하나에 작게는 몇십 많게는 100kg을 가볍게 넘어가는 걸 들다보면 뼈마디가 부숴질 것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날씨는 겨울인데, 몸에서 흘러내리는 땀과 얼굴에 묻은 검은 가루들을 보면, 마치 여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은 비수기니까 망정이지, 한 여름에 40도에 육박하는 온도에서 온갖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작업을 할때와 비교하면, 지금이 훨씬 낫긴 하지만.


"야, 시발! 똑바로 안 하냐!"


바로 옆에서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귀창이 떨어질 것 같은 목소리가 곳곳에서 울려퍼진다.

여기는 조금만 잘못하면 손 한짝 날아가거나, 깔리거나, 허리가 날아간다. 뭐, 단순히 비유가 아니라 진짜였지만.

조립쪽은 반복 작업이 너무 심하다보니까 체감적으로 3~6개월에 한 번씩은 크고 작게 사고가 났었지. 가장 최근 게 5개월 전이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사방에서 들리는 기계음과 열기에 만신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위하여!"


쨍그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소주가 한 잔 더 돌았다.

벌써 몇병째지.

이 일이 더럽고, 하기 힘들어서, 술을 마시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근데 제발 난 좀 그만부르라고.

반강제로 끌려가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 아저씨들은 질리지도 않는 지, 쉬지도 않고 입에 술을 흡입하고 있었고, 혼자서 마시는 게 서러운지 내게도 계속해서 술잔을 돌렸다.

이미 얼굴은 빨갛게 변했고, 낮과는 다른 열기가 온 몸을 후끈후끈거리게 만들었다.


'아, 시발... 이러다가 진짜 죽겠네.'


어쩌이찌 2차까지는 이해를 했지만, 그 이상은 도저히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건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시고 있는거다.

돈이 없다고 중간에 빠져나오려고 각을 잡았었지만, 이 아저씨들은 내 등을 쌔게 두들기고는, '오늘은 내가 산다!'라고 외치고는 끌고갔다.

이러니까 자주 도망을 치는거야 도망을...


"뭘 쉬고 있냐. 마셔!"


낄낄거리면서 이미 눈이 반쯤 맛이 갔으면서도 술을 돌리는 아저씨들.

내일 작업은 안중에도 없는 지 돌렸다.


'아, 쉬고싶다.'


내 속 마음과는 달리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갔다.






발이 꼬이고, 머리가 미친 듯이 아프다.

깜빡이는 가로등을 불빛 삼아서, 비틀거리며 벽을 집으며 걸었다.

흔들흔들, 터벅터벅.

새하얀 입김이, 하늘에서 흩어졌다.


"하하..."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계단의 난관의 차가움이 손 바닥을 타고 뇌리를 찔러왔다.

기분 좋은 차가움.

끊어지려는 필림을 간신히 이어붙이고는, 열쇠를 뒤적였다.


『㏘ª®



열쇠가 땅에 떨어졌다.

열쇠를 주우려고 손을 뻗었지만, 순식간에 균형 감각을 잃고 쓰러졌다.


"아, 젠장할. 이래서 술은..."


겨우겨우 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손에 쥐고, 제대로 일어나지지도 않아서 문에 매달리듯이 열쇠를 쑤셔넣었다.


"...좀, 이럴때는 들어가라."


마음만 같아서야 당장 문을 부숴버리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당장에 보증금과 수중에 현금을 생각하니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한참을 문과 씨름하다가 겨우 문이 열렸다.


『덜컥』


... 문을... 닫고

잠궈야하는데...

...잠궈






"―― 무, 물..."


머리가 미친 듯이 깨질 것 같았다.

손이 수전증 환자처럼 떨리면서, 목구멍에서 물을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온 몸이 추워서 바들바들 떨렸고, 뭔가 불편한 감각에 기분까지 최악이었다.


'도대체 난 어디서 잔거야?'


얼굴을 찡그리면서, 겨우 두 눈을 뜨려는데 거기에 꼬맹이가 있었다.


"...?"

"...아"


순간 내가 지금 꿈을 꾸고있는지 착각했다. 아니면 지금 현실이 아니거나, 나 자신이 미친새끼라거나.

두 눈을 손으로 비볐지만, 거기에 있는 건 꼬맹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꿈인가하고 싶었지만, 이 온 몸이 떨리는 차가움과, 당장이라도 물을 마시고 싶다는 욕구를보니까 현실인 것 같았다.


"니가 왜 여기있냐?"


꼬맹이가 벌써 다른 집의 문을 딸만한 실력이 생긴건가? 아니, 그러고보니까 마지막에 필름이 끊기기 전에 내가 문을 잠궜던가?

아니, 그런 것보다는 물, 물이야 물. 당장 물이 필요해.

잠시 고민은 뒷전으로 해두고 물을 찾으려고 하는데 꼬맹이가 눈 앞에 컵을 내밀었다.


"... 물."

"아, 고마워."


반사적으로 꼬맹이가 내민 물을 빼앗듯이 손에 쥐고는, 단 번에 마셨다.

겨우, 아주 조금 갈증이 가라앉고,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하고 잠시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꼬맹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학교... 갈게."


그리고는 천천히 문을 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 뭐냐 이건?"


잠시 믿기지 않는 현실에 황당하기 그지 없었지만,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황당함은 뒤로 던져버렸다.


"아, 젠장."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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