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2017.06.01 15:18

석양이 내리쬐는 광장에서 소녀는 눈앞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그것은 마치 미지와 조우하였던 과거 인류의 선조들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푸른 눈동자의 소녀가 바라보는 것은 자신의 머리카락과 같은 진한 녹색의 웅장한 건물이었다.

진녹색의 웅장한 박물관에 나부끼는 삼색 깃발그것은 이 나라 모든 민중이 자랑스러워하는 예술과 문화의 집합체였다다른 나라의 박물관들이 피와 약탈로 이루어져있다면이곳은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만들어진 곳이었다.

소녀의 푸른 눈동자가 박물관을 바라보는 사이에조금씩 소녀의 곁으로 움직였다광장의 주변에는 북적이는 인파가 넘쳐흘렀지만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향하는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이것을 알아차린 인간은 아마도 오직 나뿐인 것 같았다.


석양이 점점 저물어가면서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쳐지나갔다새하얀 입김과 함께 약간의 추위가 느껴지자 어쩔 수 없이 품 안에서 손을 넣었다손끝이 향한 곳에는 부드러운 질감의 포켓이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듯한 착각을 들게 만들었다.

새하얗게 둘둘 말린 담배최근에는 이것도 구하기가 힘들었지만이 추위를 떨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라이터에 불을 키고담배에 불을 붙였다고즈넉한 연기와 함께 소녀의 모습이 흐릿하게 일그러졌다.

일그러진 소녀의 모습은 마치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듯해 보였다주변의 인파는 점점 더 소녀의 곁에서 멀어지고 있었고나는 더욱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드넓은 광장에서 웃고 떠드는 인파의 숲을 헤쳐 나갈 때마다 연기는 길게 늘어졌다늘어진 연기는 마치 쇠사슬처럼 보였다쇠사슬은 길게 늘어져서 광장의 끝을 향해 흩날리고 있었다.

흩날리던 연기는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서 소녀를 향해서 이어졌다담배가 모두 불타고 연기가 바람에 흩날려 사라질쯤에야 소녀의 곁으로 갈 수 있었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뒤로하고 박물관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동자는 하늘과도 같은 푸름을 간직하고 있었고소녀의 머리카락은 태양처럼 반짝이는 노란색이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소녀의 몸은 바짝 말라있었다어려보이기도 했지만조금은 나이가 들어 보이는 기괴한 모습.

10살인가아니면 20살인가그것도 아니면 30살인가?

소녀의 모습은 나이를 짐작하게 어렵게 만들었다소녀의 눈동자를 본다면 10살이라고 믿겨질 정도였고그녀의 외모를 본다면 20살이라고 짐작이 되었으며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30살을 앞두고 있는 것 같았다.

묘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르고 큰 소리로 말했다.


뭘 보고 있는 거니?”


말을 입 밖으로 꺼냈을 때야 아차하는 감정이 들었다갑자기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말을 건다면 그것은 아무리 봐도 범죄로 보이지 않을까하는 걱정까지 들었지만그것은 기우였다는 듯이 소녀는 활기차게 입을 열었다.


눈앞에 보이는걸 보고 있어요.”소녀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소녀의 웃음에 마치 내 자신이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뜨겁게 움직이는 심장과 함께 볼이 살짝 붉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을 보고 있었구나이 나라의 자랑이란다아름답지?”

무척이나 아름다워요이렇게 아름답고 놀라운 건물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놀랍다라재밌는 표현이구나보통 이 건물을 본 사람들은 아름답거나 웅장하다는 표현을 쓰는데 말이야.”


소녀가 바라보는 새로운 해석에 약간의 시간을 들여서 말한 대답이었다.

박물관은 크고 웅장하면서 아름다웠다모든 이들이 박물관을 보면서 말하는 표현이었지만소녀는 놀랍다며 박물관을 향해 팔은 흔들었다.


놀라워요이렇게 아름다운 박물관에 예술을문화를발전을 아무런 피도 흘리지 않고 채워넣을 수 있다는 걸요.”


소녀는 새하얀 입김을 내뱉으며나에게 다가와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스러웠지만묘하게 일그러진 미소를 볼 수가 있었다.


이곳은 수백년의 시간동안 옛 우리의 선조가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으면서 다른 나라의 여러 가지 것들을 채워넣었지전 세계에서 이보다 더 평화로우면서아름답고 웅장하며 이토록 거대한 박물관은 없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단다.”


나는 소녀가 일그러진 미소를 뒤로하고 자랑스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이 인류의 보고라고 할 만큼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박물관은 피 한방울 없이 이루어진 자랑이었다어둠속에서도 서있는 삼색기가 박물관의 무결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름다고 무결한 박물관이라니 더욱더 흥미가 생기네요그런데 왜 이렇게 제 심장은 박물관을 보면서 두근거릴까요?”


소녀는 마치 자신의 심장 소리를 직접 듣는다는 듯이 얼굴을 숙여서 심장을 향했다고개를 갸웃거리는 소녀의 모습은 토끼를 연상시키는 듯한 모습이었다.


사람은 참을 수 없는 감각이 들면 가슴이 두근거리거나그게 아니라면 진짜 아름다움을 봤을 때 심장이 자신도 모르게 뛴단다네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유는 이 박물관의 진짜’ 아름다움을 내면부터 사실은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지.”

진짜 아름다움이라……그건 뭐라고 할 수 있나요?”


소녀의 푸른 눈동자와 내 눈동자가 마주쳤다너무나도 푸른 그 눈동자에는 소녀를 바라보는 내 모습이 보였다.


진짜 아름다움그것은 죄 없는 아름다움이란다세상에 아름다운 것은 끝없이 많지만 피를 머금지 않은 아름다움은 그렇게 많이 없단다피를 머금은 아름다움은 것으로는 모든 이들에게서 탄성을 자아낼 수 있지만그것은 결국 외면에 불과할 뿐이지진짜 아름다움은 피를 머금지 않고도 스스로 빛나는 것들이지이 박물관도 그렇단다피를 머금지 않은 스스로 빛나는 아름다움을그리고 역사와 함께하는 웅장함을 보여주는 것이지.”


약간은 철학자가 된 듯이 횡선수설을 해보았지만과연 이 어리면서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 소녀가 내 말뜻을 이해할 것인지는 모르겠다과거부터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집착을 했고그것은 인류의 문화와 삶을 살찌웠다하지만 살찌워진 것은 결국 거짓된 가면에 지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피를 머금고 찌워진 아름다움이란 말인가얼마나 많은 위선을 담은 아름다움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 박물관은 진짜’ 아름다움이라고는 하기가 어렵겠네요.”소녀는 고개를 저으며살짝 나를 밀치고는 등을 돌렸다그녀가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는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는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을 할 수 있는 거지?”


단언하는 소녀의 목소리에 반대로 의문이 들었다소녀의 목소리에는 아주 작은 흔들림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박물관은 진짜 아름다움이 아니니까요피를 머금은 아름다움이에요.”

이 박물관은 현재 전 세계의 어디를 둘러봐도 이곳처럼 깨끗한 곳은 없다고 자부할 수 있단다세계에서 거대하고 아름답다는 박물관들은 여러 민족이 가지고 있던 아름다움을 강탈해서 만든 위선일 뿐이지만이곳은 강탈한 아름다움이 아닌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모은 곳이지.”

정말로 대가를 치른 정당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럼 물론이지.”


소녀는 어둡게 빛나는 도시를 향해 손을 뻗으며 귀를 기울였다.


들리지 않나요목소리가?”

무슨 목소리가 들린다는 거니?”

보이지 않나요흐느낌이?”

누가 울고 있다는 거니?”


소녀는 내 물음에 답을 하지 않고서 우뚝 멈춰서 빛나는 삼색기를 가리켰다.


저 붉게 물든 것이 보이지 않나요수많은 이들이 박물관을 살아있게 만들기 위해서 흘린 눈물이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흘린 피가 보이지 않나요억지로 돈을 쥐어주면서 빼앗아간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나요?”


소녀의 푸른 눈동자는 모든 것을 비추고 있었다숨기고 있는 비밀을 중얼거리는 듯이 태양처럼 빛나는 노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증오를 보이는 농민이 보이지 않나요작물을 심으려고 남겨두었던 종자를 가져갔군요그렇게 가져간 종자는 벽돌이 되어서 박물관의 벽이 되었네요.”


소녀는 한걸음 걸었다.


피를 흘리는 노동자가 보이지 않나요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끌려와서 벽돌을 쌓아 올리고 있군요그들의 시체가 박물관을 튼튼하게 유지시키고 있네요.”


소녀는 다시 한걸음 걸었다.


수탈당한 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나요예술과 문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에게 돌아와야할 정당한 몫이 빼앗긴 모습이… 신음하는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소녀는 또 다시 한 걸음 걸었다.


힘과 협박에 결국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내려놓는 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요정말인가요?”


소녀의 마침내 내게 다가와서는 심장에 귀를 기울였다.


빠르게 뛰는 이 고동은 무엇 때문인가요어째서 이렇게 고동치고괴로워하고 있는 건가요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진실을.”


푸른 눈동자는 아래에서 내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순수하게 빛나는 그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신음하는 민중들이었다.

몇백년 전의 그들의 모습이그리고 영광이라는 이름하에 쓰러져간 순수한 민중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째서 아름다움으로 죄를 숨기려고 하시죠?”


소녀의 말이 비수처럼 심장을 찔렀다.


어째서 죄를 아름답다고 찬양하는 거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나를 부정하는 소녀의 목소리에 정신이 어지러웠다.


그건.”


입을 열고 싶었지만식어버린 입술은 열리려고 하지 않았다지금까지 피해왔던 진실들이웅장한 아름다움의 빛이 바래지면서빛나던 삼색기가 지금은 그저 어둠에 묻혀있다는 것만이 보였다.


스스로 마주 보기를 두려워 하지마세요.”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려고 하지마세요.”

절대로 도망치지마세요.”


소녀의 푸른 눈동자가 비추는 것은 과거도 현재도 아니었다그것은 라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당신은 누구보다도 아름다워질 수 있어요누구보다도 빛날 수 있어요누구보다도 거대해질 수 있어요단지 스스로의 빛을 꺼버리지 않는다면요.”


소녀는 양손으로 볼을 잡고는 살며시 입을 맞추며말했다.


자신을…… 부정하지마세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소녀는 사라졌다마지막에 푸른 눈동자에 비춰진 것은 바로 소녀의 모습

그것은 과거의 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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